아침 6시에 일어났다. 호스텔 방안은 깜깜하다. 조용조용 세면도구를 챙겨 샤워실에 씻고 나왔다. 옷을 꺼내려다보니 캐리어가 쿵쾅거린다. 어글리코리안되기 싫은 코리안은 준비를 서두른다. 오늘은 비에이/후라노 근교에 간다. 차가 있어야만 쉽게 갈 수 있는 곳들이라 투어를 많이 한다고 해 나도 미리 투어를 예약했다. 국내에는 몇 군데가 유명한데 나는 "인디고트래블"로 예약했다. 간식거리를 사들고 모임장소인 삿포로역에 갔다. 여유있게 20분은 일찍 온 것 같은데 역시 우리 부지런한 한국인들. 이미 거의 만차다. 어제는 한국인을 한 명도 못만났는데 다 어디들 계셨던거지? 무튼. 평일인데도 만차인 것이 놀라웠는데 나중에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최근에는 늘 만차라고.
원래 아침 안먹는데 일본에서는 편의점이라도 털고 싶어 배고프다는 핑계삼아 산 간식. 이거 정말 맛있다. 앞으로 여행기에 종종 등장할 예정인데. 엄청나게 촉촉하고 슈크림도 안에 꽉차있다. 귀국 때 몇 개 담아오고 싶었는데 엔화도 부족하고 시간도 없어 사지 못했다.
시간이 되어 출발. 근데 이 가이드 대단하다. 막힘없이 소개를 하고 이야기를 한다. 거기에 노래까지 부른다. 오랜만에 보는 파워EEEEEE 가이드의 이름은 "치즈" 우리는 그녀를 "치즈짱"이라고 부른다. 치즈짱의 가이드를 듣다가 졸았더니 스나가와 하이웨이 휴게소에 도착했다.
스나가와 하이웨이 휴게소
우리나라 휴게소와는 다른 외관. 유명한 먹거리들이 많아 치즈짱이 소개를 해주었고, 놓칠 수 없는 나도 간식거리 몇 개를 주섬주섬 구매하기 시작했다.
이거 강추다. 둘이 왔다고 하나만 사지 말고 꼭 두 개 사야한다. 빵은 쫜득촉촉인데 슈크림이 그냥 통으로 들어서 넘친다. 근데 신기한게 달지 않다. 그냥... 맛있다.! 이 후에 오타루에서도 봤는데 비가 와서 사지는 못했다.
우유도 유명하다고 한다. 실제로 더 고소하다. 이 외에도 붓기를 빼준다는 옥수수물도 샀는데 옥수수수염차보다 훨씬 옥수수맛이 강하게 느껴졌다. 우유가 유명하니 당연히 아이스크림도 유명한데 혼자 여행의 슬픔이란 맛있는걸 모두 못먹는다는것 아닐까? 아쉽게도 먹지는 못했다.(먹지 않은게 아니다. 못먹었다.)
패치워크로드
패치워크로드에 도착. 라벤더가 피는 계절이 아니라 우리가 흔히 보던 색의 패치워크는 아니지만 가을의 패치워크로드 또한 나름의 운치가 있다. 사람도, 그 무엇도 느껴지지 않는 거리. 치즈짱이 모두의 사진을 찍어주고 나 또한 용기를 내어 사진을 찍었다.
비에이 마을
비에이 마을에서 점심 식사를 한다. 치즈짱은 미리 전체 인원에게 점심 후보를 주고 예약까지 하는 세심함을 보였다. 나는 가진 않았지만 비에이에서 가장 유명한 맛집인 준페이 또한 기다리지 않고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삐뚤어진 나는 그 소리를 들으니 더 안가고 싶어진다. 가이드인 치즈짱이 총 10곳을 소개했는데 소개글이 딱 내 스타일인 곳에 가기로 했다.
"신상 비에이마을 일본풍 중화요리 좌석은 8석 뿐이지만 담백한 관동면(닭칼국수)야채듬뿍, 고기 새우까지 알차서 짠음식이 싫으신분들은 추천! 간장계란 밥에 돼지고기 조림이 들어간 세트도 맛나고 매주 메뉴가 조금씩 바뀌는데 다맛있고 특이함! 디저트로 인절미도 맛있어요"
이 중 "일본풍", "8석뿐인 좌석", "짠음식이 싫으신분", "메뉴가 조금식 바뀌는데"라는 수식어들이 딱 이 집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라? 근데 나 혼자 뿐이다. 더 좋다! 치즈짱도 좋아하는 집이라며 같이 가자고 해 치즈짱과 점심을 하게 되었다.
비에이 '메시야'
오늘은 3가지가 준비되어 있고, 이 중 하나를 골라 먹을 수 있다. 이런 다 맛있어 보인다.
고민을 하다가 계란스프와 중화풍 오므라이스인 A세트를 주문했다. 따뜻한 계란국과 느끼하지 않고 짜지않은 중화풍 오므라이스가 잘 어울린다. 오므라이스... 최고였다. 근데 이게 1000엔이라니. 요즘 우리나라 물가면 어림도 없다. 거기에 일본풍 중화요리라는 프리미엄까지 붙어 못해도 만원 후반대는 줘야 할지도 모른다.
맥주가 빠질 수 없다. 삿포로 클래식 한 병을 주문해 홀짝이는데 모든 관광객을 식당에 넣은(?) 치즈짱이 왔다. 치즈짱은 탕수육세트로. 약소하지만 맥주 한 잔을 치즈짱에게도 주고, 사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27살인 치즈짱은 어린 나이가 믿기지 않을만큼 성숙하고 도전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 큰 영감을 얻었다. 이 후 리뷰를 남겼는데 짧은 인연에 답글까지 줬던...
인디고트래블에서 비에이후라노 투어를 한다면 꼭 치즈짱의 투어를 추천하고 싶다.
투어 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탁신관. 그 이유는 마세다 신조라는 사람의 일생이 지금 나에게 와닿았기 때문. 마세다 신조는 45살까지 회사원이었다가 돌연 "나 사진작가 할래!"라고 결정, 비에이에 왔다가 비에이에 반해 죽을 때까지 비에이 곳곳을 촬영했다. 이 후에는 그의 아들이 아버지의 일을 대신하고 있다. 어떻게 그런 용기가 생겼을까. 우리는 모두 그런 마음은 늘 있다. 퇴사할꺼야, 사표쓸꺼야, 일그만할꺼야, 좋아하는일할꺼야... 근데 실행할 용기가 없다. 마세다 신조처럼 실행하고 싶다는 생각과 행동의 의지가 강해졌다.
거기에 사진까지 멋졌으니 말 다했다. 처음으로 탁신관에서 기념품을 구매했다. 종이액자와 비에이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보이는 엽서 4장이다.
탁신관 옆에는 이런 자작나무숲길이 있다. 낙엽을 밟으며 걷는것만으로 위안이 되는 길이다. 조금 더 오래 길을 걷고 싶었는데 아쉽지만 다음 목적지로 이동한다.
흰수염폭포
흰수염처럼 보이는 폭포다. 사실 딱히 볼거는 없다. 나는 오히려 저 멀리 보이는 설산의 풍광이 더 아름다웠고, 올라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에서도 설산이 계속 보이는데 일본에서 이 더운 날씨에 설산을 보다니 이질적이어서 더 좋았다.
청의호수
그림같은 곳. 잘못 보면 사진에 필터 씌운 것처럼 보이는 곳. 청록색이라는 색이 잘 어울리는 곳.
닝구르 테라스
역시 투어의 마지막인 이유가 있다. 해도 지기 전이라 더 볼거리가 없는 곳이었다고 느껴졌다. 장인들이 만들고 있던 것들도 물론 장인의 작품이지만 너무 가격이 비쌌고 들어가서 구경만 하기에도 내향형 인간들에게는 어려웠다고나 할까. 한바퀴 휘 돌고 이제는 삿포로역으로 간다.
가는 중에도 쉬지 않고 다음 여정을 소개해주는 치즈짱. 당일치기로 많이 가는 오타루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고, 삿포로 맛집이나 사야할 쇼핑 리스트도 모두 카톡으로 공유해주었다. 또한 당일 저녁 예약까지 대신해주는 친절함까지. 나도 치즈짱 덕분에 가보고 싶던 삿포로 징기스칸(양고기) 집을 예약했다.
예약시간이 남아 숙소에 들러 휴대폰을 충전하면서 닝구르 테라스에서 구매한 멜론사와를 마셨다. 맛은 멜론음료의 맛. 일본은 지역 특산물과 관련한 것들이 잘되어 있다. 유바리멜론이 유명하니 멜론사와, 멜론포키 등이 있다. 다른 지역들도 비슷하다. 아오모리는 사과 천국이고, 마쓰야마는 여기저기 귤이다.
징기스칸을 먹으러 가는 길에 드디어 만난 스스키노 거리의 닛카 아저씨. 번화가라는게 확 느껴진다. 사람도 많고 불빛도 많고 일본 번화가 특유의 유흥거리 느낌이 난다.
다이치
스스키노 거리에 있는 징기스칸 맛집 다이치다. 다이치는 다찌 형태의 개별 화로로 되어 있다. 나는 양고기와 가쓰오부시밥을 주문했다. 화로에 불을 붙이고 양파를 잔뜩 얹어준다. 열이 어느정도 되면 고기를 올려도 된다고 알려준다.
내가 지금까지 먹었던 양고기는 중국식 양꼬치, 양갈비였는데(물론 특이하게 양수육을 먹어본 적은 있으나 누릿내가 심했다.) 처음으로 불판에 굽는 양고기를 먹게 되었다. 고기는 얇고 전혀 양고기 냄새가 나지 않았다. 마치 질리지 않는 소고기 같았다. 1~2점씩 소중하게 구어 먹는데 스태프가 옆자리의 일본 여성분을 소개해준다. 일본어를 전혀 못하는 나는 당황한다. 소개를 받았으니 인사는 해야한다. 인사를 꾸벅하고 억지 미소를 선보였다. 다시 고기에 집중하려는 찰나 여성분이 말을 건다. 우리는 짧은 영어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는 오키나와에 살고 있고, 삿포로에는 휴가를 내어 여행을 왔다. 대략 10년 전쯤 오키나와에 갔어서 대충 아는 척도 해보고 35일간 일본 여행을 하고 있으며 이제 이틀째고,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좋아한다는 참 밑도끝도 없는 이야기를 해버린다. 인상좋고 미소가 사랑스러운 그녀는 짧은 영어에도 잘 들어준다. 일본어를 잘하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라인을 안하는 나와 카톡을 안하는 그녀는 이제 더이상 연락할 길이 없다. 그 때는 인스타그램도 안하기도 했고 말이다. 그래도 내일 오타루에 가는 계획이 같아 혹시나 다시 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며 인사를 나눴다.
다이치 스탭들은 모두 이렇게 와서 손님들에게 인사를 하고 명함을 준다. 얼굴을 내건 음식점이 더 신뢰를 받는 것처럼 이름이 적힌 명함은 음식에 대한 자부심 아닐까.
이 날은 이런 저런 간식을 사느라 비용을 초과해서 이자카야는 가지 못했고, 투어 때 구매한 男山 캔사케를 숙소에서 한 잔 마셨다. 오랜만에 많이 걸은 날. 다리가 아팠다.
다음 날 아침에 먹으려고 아낀 병우유. 진짜 우유가 맛있다. 일기를 쓰고 책을 읽다가 스르륵 잠이 들었다. 내일은 오타루 당일치기다.
일본어 못하는 여자 혼자 일본 전역 기차 여행
2일차 비에이/후라노 여행기 끝
→ 1일차 여행기는 여기서
조금 더 많이 알면
더 많이 보입니다.
렌트카 여행이 아니시라면
근교 여행은 투어도 추천하고 싶습니다.
내향형인 저도 즐겁게 투어에 참여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다음 포스팅은 오타루입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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