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잠>은 개봉 전부터 2023 칸 영화제 초청작으로 이미 유명세를 탄 상황이었다. 거기에 이선균, 정유미 주연의 영화라니 단연코 코로나 끝 무렵의 기대작이지 않았을까. 나 또한 극장에서 볼 영화 중 하나였는데 미루다가 놓치게 되었고 영화가 꽤 괜찮다는 평가 결말이 이상하다는 평 사이에서 더 궁금증이 생겼던 영화다. 더군다나 최근 청룡영화제에서 <잠>으로 여우주연상을 받기도 한 정유미와 다른 쪽으로 이슈가 생겨버린 이선균까지. 12월에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후 오늘 새벽에 혼자 무서움을 이기고 보게 되었다.
불안과 불신
영화는 첫 씬부터 수면장애, 몽유병이라는 것이 무섭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잠에서 깬 수진은 남편인 현수가 옆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일어나보니 침대 맡에 앉아있는 현수. 나지막히 "누가 들어왔어"라고 얘기하는 현수에게 "누가?"라고 물어보지만 현수는 바로 다시 기절해 잠이 든다. 이 후부터 현수의 몽유병 증세는 심해지고 심지어 자해를 하거나 생명을 죽이는 일까지 벌어진다. 수진은 <둘이 있으면 해결하지 못할 문제란 없다>라는 가훈 아래 현수의 몽유병을 고쳐보려고 하지만 같이 키우던 강아지까지 변을 당하자 이 후부터는 현수를 믿지 못하고, 갓 낳은 딸까지 해칠까봐 불안에 시달린다. 여기서부터는 현수가 병에 걸린 것인지, 수진이 병에 걸린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빠른 호흡으로 영화가 흐르는데 특히 정신착란에 빠진 정유미의 연기가 돋보인다. 최근에 본 책에서 일본의 옴진리교의 신도 중 의외로 명문대 공학도들이 많았다고 한다. 시스템과 데이터만을 근거로 살았던 사람들이 오히려 비정상적, 비상식적인 교주에게 빠져들 수 있다고 하는데 수진이를 보면서 유사한 느낌을 받았다. 무속신앙을 주로 믿는 엄마에게서 자란 수진이 갑자기 무속신앙에 집착적으로 빠져드는 것부터 불안과 불신이 얼마나 비상식적인 것들로 인도하게 되는지 보여준다. 더 재미있는건 자신의 의견에 대한 근거를 자료까지 준비해 남편에게 PT한다는 것이다.
결말이 왜? 이 결말이라 더 좋아.
영화를 본 많은 분들의 결말에 대한 호불호가 있었다. 아마도 결말에서 어떤 것이 진실이고, 해답인지 그리고 진짜 이선균은 병이나았는지 등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일거다. 근데 나는 관객들에게 열어주는, 질문을 던지는 결말이야말로 영화의 여운을 더해주고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든다 생각한다. 물론 해피엔딩, 새드엔딩 등 명확한 것들이 좋고 영화를 레저의 수단이라고 생각한다면 충분히 그런 의견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의견이 분분하고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알 수 있기에 이런 결말이라 더 좋았다.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신인 감독 유재선
1989년생인 유재선 감독. 이제 나오는 감독님들이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라니. 지금까지 나는 무얼했나 싶기도 하지만 웹툰 원작이 아니면 쓸 이야기가 없나 싶을 정도로 한국영화나 드라마가 볼거리가 없던 이 시점에 유재선이라는 감독님이 참 반갑게 느껴진다. 요즘 신인감독상을 많이 받으시는 것 같은데 다음 작품이 더 기대된다. 부디 부담보다는 유재선이라는 감독다운 영화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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