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본 영화계를 뒤흔드는 감독이 있다. 바로 하마구치 류스케다. 우연과 상상을 시작으로 드라이브 마이 카,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등으로 일본 자국 내 뿐만 아니라 해외 평단에서도 극찬을 받고 있는 감독. 이 중 오늘 소개할 단편소설집의 첫 번째 단편을 원작으로 한 <드라이브 마이 카>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국제장편영화상과 크리틱스 초이스 등 전 세계의 권위 있는 시상식을 휩쓴 작품이다.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집 '여자없는 남자들' 의 가장 처음으로 소개되는 동명의 단편소설이다.
소설집은 총 일곱 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하루키 특유의 감성이 물씬 난다. 모든 이야기에는 인간으로 인한 상처를 고독하지만 인간으로 극복하는 듯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이 중 두 번째 단편인 '예스터데이'를 좋아하는데 상실의 시대와 유사한 분위기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드니 상처를 치유하는 것보다 상처를 정면 하는 게 더 힘들다고 느끼는 요즘인데 책을 읽는 내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0년 전 읽은 상실의 시대를 다시 꺼내봐야 하나 싶다.
* 이 책의 문장 수집
#1. 드라이브 마이 카
배우인 가후쿠가 젊은 여성 운전사 미사키와 차 안에서 대화를 나누며 아내의 불륜과 죽음에 대해 회상한다.
37p. 그중에 어떤 것이 아내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그것까지는 모르겠어. 인간이 그렇게 세세한 핀포인트 수준에서 행동하지는 않으니까.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는다는 건, 특히 남자와 여자가 관계를 맺는다는 건, 뭐랄까, 보다 총체적인 문제야. 더 애매하고, 더 제멋대로고, 더 서글픈 거야."
44p. 세상에는 크게 두 종류의 술꾼이 있다. 하나는 자신에게 뭔가를 보태기 위해 술을 마셔야 하는 사람들이고, 또 하나는 자신에게서 뭔가를 지우기 위해 술을 마셔야 하는 사람들이다.
51p. 아무리 잘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라도,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타인의 마음을 속속들이 들여다본다는 건 불가능한 얘깁니다. 그런 걸 바란다면 자기만 더 괴로워질 뿐이겠죠. 하지만 나 자신의 마음이라면, 노력하면 노력한 만큼 분명하게 들여다보일 겁니다. 그러니까 결국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나 자신의 마음과 솔직하게 타협하는 것 아닐까요? 진정으로 타인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나 자신을 깊숙이 정면으로 응시하는 수밖에 없어요.
#2. 예스터데이
간사이 사투리를 쓰고 비틀스 노래를 개사해 보르는 친구 기타루와 그의 여자친구 에리카에 대해 이야기한다.
79p. 인생이란 게 그렇게 미끈하니, 걸리는 것 하나 없이 편안해도 괜찮을까. 그런 불안도 내 안에 없지 않더란 말이야.
90p. 젊을 때 그런 외롭고 혹독한 시기를 경험하는 것도 어느 정도 필요하지 않을까? 말하자면 인간이 성장하는 과정으로. 나무가 늠름하게 자라나려면 혹독한 겨울을 통과해야 하는 것처럼. 항상 따뜻하고 온화한 기후에선 나이테도 안 생기겠지.
94p. 시간의 속도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어긋날 수도 있어
94p. 기타루는 아마 뭔가를 진지하게 찾고 있는 걸 거야. 여느 사람과 다른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자신만의 시간 속에서, 매우 순수하고 정직하게, 하지만 자기가 뭘 찾고 있는지 스스로도 아직 파악하지 못한 거겠지. 그래서 여러 가지 것들을 주위에 맞춰 앞으로 척척 끌고 나갈 수가 없어. 무엇을 찾고 있는지 스스로도 잘 알지 못하면서 그 무엇을 찾아다닌다는 건 몹시 어려운 작업일 테니까.
101p. 그게 대체 뭐가 잘못인데? 지금 당장은 어느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다. 그러면 된 거 아니야? 어차피 우린 지금 당장 말고는 한 치 앞도 모르잖아. 네 인생이야. 뭐든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109p. 우리는 누구나 끝없이 길을 돌아가고 있어.
112p. 하지만 스무 살이던 시절을 돌아보면 떠오르는 것은 내가 외톨이고 한없이 고독했다는 느낌뿐이다. 나에게는 몸과 마음을 따스하게 해줄 연인도 없었고, 흉금을 터놓고 대화할 친구도 없었다. 하루하루 뭘 해야 좋을지도 알지 못했고, 마음속에 그리는 장래의 비전도 없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내 안에 깊이 틀어박혀 있었다. 그런 시기가 혹독한 겨울이 되어 나라는 인간의 내면에 귀중한 나이테를 남겼을지, 그것까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113p. 행복하다고까지는 못 하더라도 적어도 오늘 하루를 부족함 없이, 건강하게 보내기를. 내일 우리가 어떤 꿈을 꿀지, 그건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는 것이니까.
#3. 독립기관
중년 미혼 남성의 자유로운 성과 느닷없이 닥친 사랑의 결말을 전한다.
130p. 프랑수와 트뤼포의 옛날 영화에 이런 장면이 있어요. 여자가 남자에게 말합니다. '세상에는 예의바른 사람과 재치 있는 사람이 있어. 물론 둘 다 훌륭한 자질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예의보다 재치가 이기지.'
166p. 모든 여자는 거짓말을 하기 위한 특별한 독립기관을 태생적으로 갖추고 있다. 모든 여자는 어느 시점에 반드시, 그것도 중요한 일로 거짓말을 한다. 중요하지 않는 일로도 물론 거짓말을 하지만 그건 제쳐두고, 아무튼 가장 중요한 대목에서 거짓말을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때 대부분의 여자들은 얼굴빛 하나, 목소리 하나 바뀌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건 그녀가 아니라 그녀 몸이 독립기관이 제멋대로 저지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4. 셰에라자드
셰에라자드라고 불리던 간병인이 들려주던 이야기를 액자식 구성으로 풀어낸다.
211p. 열일곱 살의 내가 그의 어떤 점에 그토록 깊이 빠졌었는지, 그것조차 잘 생각나지 않아. 인생이란 묘한 거야. 한 때는 엄청나게 찬란하고 절대적으로 여겨지던 것이, 그걸 얻기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내버려도 좋다고까지 생각했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 혹은 바라보는 각도를 약간 달리하면 놀랄 만큼 빛이 바래 보이는 거야. 내 눈이 대체 뭘 보고 있었나 싶어서 어이가 없어져.
#5. 기노
아내의 불륜을 목격한 후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남자가 겪은 건 무엇일까?
226p. 결국에는 이런 날을 맞닥뜨리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원래부터 아무런 성취도, 아무런 생산도 없는 인생이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고 당연히 나 자신을 행복하게 하지도 못한다. 행복이라는 것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 이제 기노는 이렇다 하게 정의 내릴 수 없었다. 고통이나 분노, 실망, 체념, 그런 감각도 뭔가 또렷하게 와닿지가 않았다.
238p. 인간이 품는 감정 중 질투심과 자존심만큼 골치 아픈 것도 아마 없을 것이다.
264p.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적어도 반은 거짓말이다. 나는 상처받아야 할 때 충분히 상처받지 않았다, 고 기노는 인정했다. 진짜 아픔을 느껴야 할 때 나는 결정적인 감각을 억눌러버렸다. 통절함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 진실과 정면으로 맞서기를 회피하고, 그 결과 이렇게 알맹이 없이 텅 빈 마음을 떠안게 되었다.
#6. 사랑하는 잠자
이름 외에는 아는 게 없이 깨어난 남자가 느닷없이 만난 열쇠수리공인 여자에게 호감을 느낀다.
308p. 세계 자체가 이렇게 무너져가는 판에 고장난 자물쇠 같은 걸 걱정하는 사람도 있고, 그걸 또 착실히 고치러 오는 사람도 있어요. 생각해 보면 참 이상야릇하다니까요. 그렇죠? 하지만 뭐, 그게 맞는지도 모르겠어요. 의외로 그런 게 정답일 수 있어요. 설령 세계가 지금 당장 무너진다 해도, 그렇게 자잘한 일들을 꼬박꼬박 착실히 유지해가는 것으로 인간은 그럭저럭 제정신을 지켜내는지도 모르겠어요.
#7. 여자 없는 남자들
어느 날 남자는 첫사랑이 사망했다는 전화를 받고 그녀를 회상한다.
336p. 하지만 그렇게까지 많이는 바라지 않는다. 설령 나는 접어두더라도, 엠이 그곳에서 영겁 불후의 엘리베이터 음악과 함께 행복하게, 평안하게 지내기를 기도한다.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양 범계 카페] 생일 케이크 포장은 딸기 디저트&케이크 맛집 "수리르케이크" (0) | 2025.02.26 |
---|---|
[안양일번가 놀거리] 먹고 마시고 부르는 룸노래방 "퀸즈노래타운" (1) | 2025.02.19 |
[안양 꽃다발 선물] 부모님 생신 꽃 추천! 일반 꽃집의 1/3가격의 "백송이전문점 안양점" (1) | 2025.02.15 |
[용인 남사 빵맛집] 날마다 직접 굽는 베이커리 카페 "통삼제빵소" (2) | 2025.02.10 |
[시흥 물왕리 카페] 캠핑에 온 듯한 식물카페 "숲에 숨다" (0) | 2025.02.0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