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만 보고 꼭 가고자 했던 곳이 다카야마 근교인 사라카와고다. 독특한 양식의 초가집이 주르륵 늘어선 사진이었는데 동화 속 혹은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나 볼법한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일어나기 힘든 아침이라 느릿느릿 버스터미널에 갔는데 이미 시라카와고로 가는 지정석은 솔드아웃인 상태. 10시 30분 자유석이라도 타기 위해 티켓을 구입 후 다시 숙소에 가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버스터미널에 가서 줄을 섰다. 다행히 자유석이었지만 바로 오는 버스를 앉아서 타고 갈 수 있었다.
시라카와고 버스터미널에 내려 걷거나 버스를 타고 전망대까지 갈 수 있는데 나는 튼튼한 두 다리로 걸어보기로 했다. 띄엄띄엄있는 건물에 저 멀리 보이는 산까지 완벽한 뷰다.
내가 본 것은 초가집이었는데 그 초가집을 보기도 전에 너무 멋진 전망을 본 기분이다. 가을을 잔뜩 머금은 산의 모습.
이제 내가 사진 속에서 봤던 집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시라카와고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일본 전통의 산간마을이다. 바로 위 사진속 집들처럼 카쇼즈쿠리 양식의 초가집으로 유명한데 '카쇼즈쿠리'는 손을 합장한 모양을 닮은 지붕이 특징인 건축 양식이다. 시라카와고는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이라 눈이 쉽게 미끄러져 내려가도록 설계한 것.
여행이 좋은 점은 타자가 된다는 것인데 낯선 곳에 와서 타자가 되어 타인을 바라본다는 것이 꽤 신기하고 설레인다.
멋지게 물든 붉은 단풍 위로 햇살이 내려오고 하늘은 푸릇하다.
관광객이 제법 있는 편이었는데도 교토처럼 어수선하지 않고 조용하다. 관광객들조차 떠들지 않고 조용히 이 공간을 즐기는 분위기였다.
걸었더니 배가 고파져 점심을 먹었다. 딱 봐도 현지인만 줄서있는 음식점이었는데 그냥 아무것도 모르고 나도 뒤에 줄을 섰다. 근데 앞에 줄서고 계신 일본인 할머니 할아버지가 뭐라고 하시면서 가게 안으로 들어가라는 시늉을 하시는거다. 알고보니 가게 안에 들어가 먼저 이름을 쓰고 대기를 하는 것이었다. "아리가또 고자이마스"하니 일본어로 다시 얘기를 하셔서 "스미마셍 간코쿠진데쓰"라고 하니 다시 일본어로 얘기를 하시길래 파파고로 잠깐 소통을 했다. 일본 전역을 한 달간 여행중이라고 하니 두 분 모두 놀라워하시며 "스고이!" 대단하다고 하셨다. 뭔가 뿌듯...! 좌식스타일의 음식점이었는데 나는 1인석을 안내받았고, 소바와 히다규 정식을 받았다. 소바는 적당히 감칠맛과 쫄깃함이 느껴졌고 히다규는... 먹을 때마다 그와 작별하는 것처럼 아쉬웠다. 2,600엔.
전망대에 올라가 보게 된 시라카와고의 전경이다. 현실이라 느껴지지 않을만큼 예뻤다. 마치 내가 소인국의 거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눈이 많이 내리는 시라카와고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엽서다. 지붕위에 눈이 쌓인 모습이 예뻐 선물용으로 구입했다.
조금 더 시라카와고에 머물고 싶었지만.. 버스를 타야했기에 다시 시라카와고 버스터미널로 갔다. 역시나 사람이 많았는데 버스를 좀 더 증편하는 것 같았다. 시간이 안되었는데 버스가 도착했기 때문.
다카야마역에 도착해 내일 시즈오카에 가는 기차표를 변경했다. 나고야 환승시간이 짧아 불안했기에 좀 더 여유있는 시간으로 변경 완료! 기차 시간 변경은 어렵지 않다. 똑같이 JR창구에 가서 예약변경과 원하는 시간을 이야기하면 된다. 다카야마역에는 외국인 관광객이 많아 다소 기다려 변경했다.
다카야마에 포장마차거리가 있다고 해 걸어가봤다. 예상보다는 문닫은 곳이 많아 번역 없이 아무 점포나 무작정 들어가봐다. 근데 라멘집..! '어제도 라멘먹었는데...간단히 이자카야 스타일을 즐기고 싶었는데...' 라는 생각이 무색하게 점포에 손님이 하나도 없어 그냥 나올 수가 없었다.
다찌가 둘러싸있는 오픈키친 형태의 가게다. 앞에는 물이 놓여있고, 메뉴판을 받아들고 무얼 먹을까 고민했는데 결국 라멘집이니 미소라멘과 교자, 하이볼을 주문했다.
마스터는 말 한마디 없이 음식만 내어주었고, 나도 조용히 받아 먹기만 했다.
죽순과 숙주나물이 적절히 들어간 미소라멘이다. 차슈는 한 장이었고, 딱히 기억나는 맛은 아니었다. 평범한 미소라멘이었다.
교자도 비슷한 느낌. 내가 다 먹을 때까지 손님은 들어오지 않고, 한 잔을 더 주문하려니 이곳에서 3만원을 쓰고 싶진 않아서 빠르게 교자까지 먹고 나왔다. 2,270엔 꽤나 비싸다.
이렇게 다카야마의 마지막밤을 보내긴 아쉽다. 이자카야를 갈까? 아님 술을 잔뜩 사들고 호스텔 라운지에서 한 잔을 더 할까 고민하다가 이자카야에 왔다. 한쪽 구성에 자리를 잡고 스윽 메뉴를 봤다. 내 옆 자리는 혼자 오신 서양인 아저씨분..!
간단히 먹을 수 있는 닭날개구이다. 나고야에서는 테바사키라고 하는데 같은 이름일까? 짭조름하니 잘 구어져 나와 맥주를 부르는 맛이었다.
다음으로 나온건 츠쿠네다. 츠쿠네는 닭고기를 갈아서 양념한 뒤에 둥글게 빚어 구운 것이다. 부드럽고 촉촉한 식감이 특징인데 이 집의 츠쿠네는 좀 더 바삭한 식감이 느껴졌다. 닭날개와 츠쿠네, 하이볼 한 잔과 사케 두 잔을 클리어했다. 2,300엔
가게밖을 나와 오랜만에 지인들과 페이스톡을 하며 신났고, 숙소 루프탑 테라스에서 커피 한 잔을 하며 다카야마의 마지막밤을 마무리했다. 일본 여행 동안 본 책에 이런 말이 있다. "3승 4패만 하면 된다. 1패를 한다고 그 동안의 3승이 없어지지 않는다." 오늘밤 유독 다시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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